달을 가리키기 위하여 손가락질을 하지만, 그 손가락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달이 중요한 것이다. 토끼를 잡기 위하여 덫을 놓지만, 그 덫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토끼가 중요한 것이다.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말을 하지만, 그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전달된 뜻이 중요하다고 장자는 말하였다.
이 세 가지 문장에서 ‘달, 토끼, 뜻‘은 비록 표현은 달라도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의학은 바로 이 ‘달, 토끼, 뜻’의 의미를 대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선 아프게 느끼는 것은 손가락, 덫, 그리고 말이다. 그것이 병이고 그 아픔을 없애는 것이 약이라고 잘못 인식한다면, 한의학은 이해할 수가 없게 되고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대유행병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맥아더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하늘이시여, 우리 아이가 편안함과 안일에 빠져 나약한 인간이 되게 하지 마시고, 고통과 시련을 주시어 강인한 인간이 되게 하여 주소서·····.”
맥아더는 자신의 아이에게 고통을 달라고 말한다. 보통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고통 없이 편안하게 지내기를 원하는데, 맥아더는 편안함과 안일에 빠지면 나약한 인간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몸이 균형을 잃고 망가져 가면 스스로 회복시키려는 기능 또한 우리 몸에 내장되어 있는데, 면역학에서는 이 기능이 실제로 발휘되는 과정이 바로 염증(inflammation)이라 말하고 있다. 즉, 염증이 일어나야만 인체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염증이 일어나면 우리 몸은 일단 고통스럽다. 그렇다면 맥아더의 기도처럼 고통을 그대로 겪는 것과, 진통소염제를 먹어서 편안하게 만드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진정 건강하게 되는 길이고 어떤 것이 인류를 망가뜨리는 것인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수 천년 전의 동양의학 서적에,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치료하는 의사는 가장 하수의 의사이다. 그렇게 하면 환자가 반드시 그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되지 말고 그 증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찾아서 다스리는 상수의 의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조금만 열이 나면 해열제 찾기 바쁘다.
기침이나 두통을 앓으면 아이가 고통스러우니 그냥 두면 안 된다고 진해제,
진통제에 우선 손이 가는 요즈음의 젊은 엄마들이다. 아이가 고통과 시련을 겪고 강인한 인간이 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는 심각한 사실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감기 치료에 대한 인식의 수준은 수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누구의 책임인지는 우리 모두 생각해볼 일이지만, 아직도 일상적인 보통 감기로 ‘감기 증상 억제제와 같은, 즉 감기를 회복시키려고 몸 스스로 일으키는 고마운 염증을 오히려 억제하는 약’을 지금도 열심히 먹인다.
아이들은 체내의 저항력이 점차 떨어져 비염, 천식, 피부질환 등에 시달리며 커오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중년 이상의 나이가 되면서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모든 것이 변화하는 PANDEMIC의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삶과 죽음이 본인의 면역 능력에 좌우되는 그런 세상을 맞게 된 것이다.
만일 이대로 문명이 흘러가고 공해가 지구의 숨통을 조여 가는데도 사람들의 자기 방어 능력에 혼란이 초래된다면, 이는 의약으로 해결할 수가 없게 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 거대한 물결을 막을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과학이 지속해서 발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언젠가 인류가 멸망하는 원인 중에 질병이 꼽힌다면, 그건 바로 이러한 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수십년 동안에 많은 임상에서 질병의 고통에 관한 인식을 바꾸어 건강을 되찾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었다. 질병의 고통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고, 평소 음식도 알고 먹는다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세상이 되어도, 틀림없이 ‘사는 자’에 속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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